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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사회적 정체성 이론(Social Identity Theory)

by goodoce 2025.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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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은 어디 학교 나왔어요?”
“혹시 MBTI 뭐예요?”
“그 게임 하세요?”
“아~ 저도 그 팀 팬이에요!”

우리는 살아가며 수없이 많은 ‘우리’와 ‘그들’을 만난다. 학교, 취미, 정치적 성향, 팬덤, 지역, 나이, 심지어 커피 취향까지.
그중 어떤 집단은 나를 따뜻하게 품어주고, 또 어떤 집단은 벽처럼 느껴진다.
나는 누구와 함께 있을 때 더 편안하고, 어떤 상황에서 더 나답게 행동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의 해답을 찾고 싶어 고민하던 중, 우연히 알게 된 심리학 이론이 있었다.
바로 **사회적 정체성 이론(Social Identity Theory)**이다.

🧠 사회적 정체성이 뭐길래?
처음 사회적 정체성이라는 말을 들었을 땐, ‘정체성? 뭐 자아나 그런 건가?’ 싶었다.
근데 알고 보니 그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이야기였다.

**심리학자 헨리 태즈펠(Henri Tafel)**은 우리가 왜 집단을 나누고, 왜 때로는 내 편을 더 좋아하며, 다른 편을 무의식적으로 경계하게 되는지를 설명하고자 이 이론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사람은 단지 개인으로서의 정체성만 있는 게 아니라, 집단 속에서의 정체성도 같이 가지고 있다고 한다.

개인 정체성: 나는 조용한 편이야, 나는 독립적인 사람이야.

사회적 정체성: 나는 한국인이다, 나는 리버풀 팬이다, 나는 개발자다.

생각해 보면, 나도 내 소개를 할 때 “00학교 나왔어요”, “요즘은 00 카페 모임 나가요” 같은 말을 자주 한다.
즉, 나는 무의식적으로 나를 어떤 ‘집단’ 속 구성원으로 표현하고 있었던 거다.

🧬 우리는 어떻게 집단을 만들고 행동할까?
**태즈펠과 존 터너(John Turner)**는 사회적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세 단계로 설명했다.
나도 이 단계를 알게 되면서 내 행동들이 좀 더 이해되기 위해 시작했다.

1. 범주화 (Categorization)
사람은 세상을 단순화시키기 위해 ‘범주’를 만든다.
학생 vs 직장인, A팀 vs B팀, 여성 vs 남성 같은 구분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게 문제다.
범주는 편리하지만, 동시에 고정관념(stereotype)과 편견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공대생은 무뚝뚝하다”, “00 지역 사람은 급하다” 같은 말들.
사실 경험해 보면 꼭 그렇진 않지만, 범주화는 우리 뇌가 작동하는 방식 중 하나다.

2. 동일시 (Identification)
이제 내가 어떤 집단에 속한다고 느끼면, 그 정체성을 내 일부처럼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난 한때 특정 축구팀의 열혈 팬이었다.
경기 결과에 따라 기분이 널뛰고, 누가 그 팀을 비판하면 내가 공격받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바로 동일시다.
내가 속한 집단을 통해 나를 더 뚜렷하게 느끼는 거다.

3. 비교 (Comparison)
그다음엔 ‘우리 집단’과 ‘저 집단’을 비교한다.
내가 속한 그룹이 더 낫다고 느낄수록, 자존감도 함께 올라간다.

이건 단순한 자랑 수준을 넘어서 차별로 이어질 수도 있다.
같은 회사에서도 ‘우리 부서 vs 다른 부서’처럼 은근한 갈등이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 최소 집단 실험 – 아무 이유 없이도 우리는 편 가른다?
내가 이 이론에서 가장 놀랐던 건, 바로 이 실험이었다.

태즈펠은 참가자들을 아주 단순한 기준으로 그룹을 나눴다.
예를 들어, 추상화 A 그림이 좋다 vs B 그림이 좋다. 정말 아무 의미 없는 기준이다.

그리고 참가자들에게 “돈을 어떻게 나눌래?” 하고 묻자,
대부분은 자기 그룹 사람에게 더 많은 돈을 줬다.

심지어 ‘모두에게 이익이 되게 나누는 방법’보다도
**‘우리 쪽이 더 많이 가져가는 방법’**을 택했다.

나는 이걸 보고 “이 정도로 본능적이구나…” 싶었다.
그만큼 집단 정체성은 우리 무의식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 집단 정체성이 우리에게 주는 것들
✅ 긍정적인 효과
자존감 강화
내가 속한 집단이 긍정적일수록 나도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우리 학교 출신은 다 열정적이야” 같은 말에 나도 자랑스러워지는 느낌, 공감될 거다.

소속감과 심리적 안정
어디에 속해 있다는 건 존재의 안정감을 준다.
특히 낯선 환경이나 이방인으로 느껴질 때, 그 감각은 더 강렬하다.

협력과 연대
같은 소속감을 가진 사람끼리는 더 쉽게 협력하고, 함께 목표를 이루려는 동기가 생긴다.

❌ 부정적인 효과
타 집단에 대한 편견과 차별
“우리와 다르다”는 인식은 곧 ‘틀린다’, ‘나쁘다’로 연결되기 쉽다.
편견과 혐오, 갈등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고정관념의 강화
집단의 특징을 과장하거나 일반화하면, 사실과 다른 이미지가 굳어진다.

사회적 갈등과 분열
극단적인 경우엔 혐오와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는 실제로 전 세계 많은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 우리가 사는 현실 속 사례들
🌐 온라인 팬덤과 커뮤니티
예전에 내가 빠졌던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를 떠올려보면, 그 안에 규칙, 문화, 심지어 '우리끼리의 농담'도 존재했다.
다른 커뮤니티와 충돌할 땐 일종의 집단 전쟁(?)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팬덤 역시 마찬가지다. 특정 아티스트를 좋아하는 감정은 점차 소속감으로, 때로는 ‘충성심’으로 바뀐다.

🗳️ 정치 성향
요즘은 정치적 의견이 곧 ‘사람 자체’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정당 지지자들끼리 벌어지는 감정싸움을 보면, 단순한 의견 차이 이상의 뭔가가 있다.
내가 비판받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 회사와 조직 내 소속
팀 단위로 일할 때, 자연스레 팀에 대한 애정이 생긴다.
반면, 다른 팀과의 경쟁은 긴장감을 불러오기도 한다.
나는 예전 직장에서 ‘우리 팀은 진짜 열심히 해’라는 생각으로 일했고, 그 자부심이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다.

🌱 어떻게 건강한 정체성을 가질 수 있을까?
사회적 정체성을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대신 건강하게 다루는 방법이 중요하다.

여러 정체성을 인정하기
나는 동시에 “한국인”, “심리학에 관심 있는 사람”, “친구”, “블로거”일 수 있다.
하나의 정체성에만 갇히지 않으면 시야가 넓어진다.

타 집단에 대한 개방성 유지하기
다른 집단도 나름의 기준과 이유가 있다는 걸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자.
나도 예전엔 이해 못 했던 문화나 커뮤니티를 경험해 보며 많이 바뀌었다.

공통된 상위 정체성 강조하기
“우리는 모두 사람이다”, “같은 목표를 가진 팀이다”라는 인식은 갈등을 줄이고 협력을 유도한다.

🧭 마무리 – 집단을 통해 나를 더 잘 알 수 있다.
사회적 정체성 이론은 단순한 심리학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왜 그렇게 생각하고,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를 풀어주는 중요한 열쇠다.

나는 어떤 집단에 속해 있을 때 가장 편한가?
그 집단은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그리고 나는 ‘우리’와 ‘그들’을 나누며 타인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 질문들을 통해, 나는 나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사회적 정체성은 나를 가두는 틀이 아니라, 나를 구성하는 색깔 중 하나일 뿐이다.

이제는 그 색깔을 벽이 아니라 창으로 사용해 보려고 한다.
더 많이 보고,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넓게 소통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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