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에도 과하게 반응하는 이유: 과민반응의 뿌리

 

“왜 나는 이렇게 별것도 아닌 일에 심장이 쿵 내려앉을까?”
“다른 사람은 웃어넘기는 말을 나는 왜 계속 곱씹으며 잠도 못 잘까?”
“이 정도 일에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나도 모르겠다…”

우리는 종종 사소한 말 한마디, 예상치 못한 상황, 누군가의 무심한 행동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한 번 욱하고 나서 스스로 실망하기도 하고,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책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과민반응(hypersensitivity)**은 단순한 ‘성격 문제’나 ‘기분 탓’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뿌리 깊은 감정과 심리적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우리가 작은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 그 심리적 배경과 뇌의 작동 원리, 그리고 스스로를 치유하는 방법까지 함께 살펴보려 한다.

1. 과민반응이란 무엇인가?
‘과민반응’이란 사소해 보이는 자극이나 사건에 대해 감정적으로 과도한 반응을 보이는 상태를 말한다. 예를 들어, 상대방의 농담 한마디에 크게 상처받거나, 누군가의 무심한 말투에 불쾌감이나 분노를 느끼고, 머릿속에서 계속 그 장면을 반복적으로 되새기는 식이다. 이러한 반응은 종종 본인조차도 “내가 왜 이렇게 반응하지?”라고 느낄 정도로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폭발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 ‘과도함’은 우리 내면의 무언가가 건드려졌다는 신호일 수 있다.

2. 과민반응의 심리적 뿌리
1) 어린 시절의 정서적 결핍
많은 심리학자는 어린 시절의 환경이 현재의 감정 반응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안정적인 애정, 인정, 수용을 충분히 받지 못한 아이는 “나는 괜찮은 존재”라는 기본적인 확신이 결여된 채 성장하게 된다. 이에 따라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과잉 경계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예를 들어, “왜 이렇게 예민하냐?”는 부모의 말에 반복적으로 상처받으며 자란 아이는 자신의 감정 표현을 억누르고, 타인의 반응을 끊임없이 의식하게 된다. 이 억눌림은 결국 작은 자극에도 폭발하는 감정으로 나타난다.

2) 자존감과 자기개념의 불안정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과민반응의 위험도는 높다.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신념을 쉽게 강화한다. 예를 들어, “나는 쓸모없는 사람일지도 몰라”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누군가의 사소한 비판에도 그것을 자기 존재 전체에 대한 거부로 확대 해석하게 된다. 이런 사람에게 ‘실수’나 ‘지적’은 단순한 피드백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위협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3) 트라우마와 미해결 감정
우리가 어릴 적 겪은 감정적 트라우마나 부정적인 경험은 시간이 지나도 무의식에 깊이 각인되어 남는다. 어떤 말이나 상황이 그때의 상처를 자극하면, 지금의 사건보다 훨씬 큰 감정이 올라오며 현재가 아닌 과거에 반응하게 된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차가운 말투가 어린 시절 부모의 냉정함을 떠올리게 할 수 있고, 그때의 무력감, 분노, 두려움이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것이다. 이런 반응은 감정의 왜곡이라기보다, 해결되지 못한 감정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증거다.

3. 뇌의 작동 방식: 뇌는 왜 위협을 과장하는가?
감정 반응의 중심에는 우리 뇌의 ‘감정 경보 시스템’이라 할 수 있는 **편도체(Amygdala)**가 있다. 편도체는 뇌에서 위협을 감지하고 빠르게 반응하도록 돕는 기능을 한다. 본래 이 기능은 생존을 위한 것이었지만, 스트레스가 반복되거나 트라우마 경험이 있을 경우, 편도체는 위협이 없는 상황에서도 과잉 반응하게 된다.

즉, 감정적으로 과민한 상태는 단순히 기분이 나쁜 것이 아니라, 뇌가 항상 위협에 대비해 긴장하고 있다. 이는 불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경계성 성격장애 등과도 관련될 수 있으며, 과민반응은 신경생물학적 메커니즘과도 깊이 연관돼 있다.

4. 감정은 메시지다: 과민반응의 재해석
우리는 흔히 감정의 격렬함을 '내가 이상하다'라거나 '통제 못 한다'는 증거로 받아들이지만, 감정은 본래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신호 시스템이다.

감정은 말한다.
“나 여기 아파.”
“예전과 비슷한 상황이야. 조심해.”
“무언가 소외되고, 무시당한 느낌이야.”

과민반응은 ‘이상한 반응’이 아니라, 내 안의 감정이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크게 흔드는 것이다. 이를 억누르고 외면할수록 감정은 더 거세지고, 정작 중요한 메시지는 점점 왜곡된다.

5. 과민반응에서 벗어나기 위한 심리적 접근
1) 감정에 이름 붙이기: 감정 레이블링
‘지금 나는 짜증 나’, ‘이건 분노야’, ‘지금 상처받았어’처럼 감정을 구체적으로 명명하면, 감정이 뇌의 언어 영역으로 이동하면서 뇌의 편도체 활성도가 낮아진다. 이는 감정을 객관화하고 다루기 위해 쉽게 만드는 첫 단계다.

2) 신체 감각 관찰하기
감정은 몸에 먼저 반응한다. 숨이 가빠지거나, 손이 떨리거나, 가슴이 조여오는 느낌. 이런 감각을 외면하지 않고 그대로 느끼고 지켜보는 연습은 감정 폭발을 막고 현재에 머물게 도와준다. 이는 마음 챙김(Mindfulness) 명상에서 자주 쓰이는 기법이기도 하다.

3) 자기 연민(Self-Compassion)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었지...”라며 자책하는 대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그때의 나도 힘들었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태도는 감정을 통합하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4) 심리상담과 치유적 대화
과거의 상처가 반복적으로 방아쇠 된다면, 전문적인 심리상담을 통해 그 감정을 안전하게 꺼내고 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할 수 있다. 누군가의 따뜻한 경청 속에서 감정은 비로소 ‘이해받고 해소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마무리하며: 예민함은 결함이 아니라 선물이다
우리는 너무 자주, 감정을 통제해야 한다고 배우고 살아간다. 하지만 감정은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돌봐야 하는 것이다. 과민반응은 결함이 아니라, 내면에 아직 치유되지 않은 영역이 있다는 중요한 신호다. 그 감정을 잘 다루기만 한다면, 예민함은 오히려 더 풍부한 공감과 섬세한 인간관계로 이어질 수 있다.

과민반응을 무조건 ‘고쳐야 할 문제’로 보지 말고, 내면을 향한 초대로 바라보자.
그 안에는 억눌린 감정, 잊고 지냈던 나의 상처, 그리고 진짜 나 자신이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