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선택의 패턴, 이유가 뭘까?

 

"왜 또 이런 사람을 좋아하게 됐을까?"
"이번엔 다를 줄 알았는데, 결국 똑같은 결말이야."
"나는 왜 늘 비슷한 상황을 자초하는 걸까?"

살다 보면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던지는 순간이 있다. 마치 반복되는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우리는 자꾸만 유사한 사람을 만나고, 비슷한 상황에 빠지며, 익숙한 결말로 돌아가곤 한다. 의식적으로는 “이제는 다르게 살고 싶다”고 다짐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또다시 과거와 닮은 선택을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 글에서는 이런 무의식적인 반복 선택의 심리적 배경에 대해 살펴보고, 그 패턴에서 벗어나기 위한 통찰을 나누고자 한다.

1. 선택은 ‘무의식’이 만든다
우리는 이성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라고 믿지만, 실제 우리의 많은 선택은 무의식적인 기제에 의해 좌우된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의식적인 사고보다 무의식의 영향력이 훨씬 더 크다고 본다. 특히 자주 반복되는 선택일수록, 그 배후에는 의식으로 인식되지 않는 정서나 신념, 또는 과거의 경험이 자리 잡고 있다.

예를 들어, 매번 연애에서 자신을 무시하거나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에게 끌리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은 의식적으로는 ‘건강한 관계’를 원한다고 생각하지만, 무의식은 익숙한 감정을 찾아 끌려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익숙함’이 꼭 ‘안전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익숙함은 과거의 상처를 되풀이하도록 만든다.

2. 어린 시절의 경험이 무의식의 기초가 된다
많은 심리학자는 반복되는 선택 패턴의 기원을 어린 시절의 관계 경험에서 찾는다. 특히 부모나 양육자와의 관계는 자아 형성, 감정 반응, 인간관계의 틀을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항상 비판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믿게 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성인이 된 후에도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에게 끌리고, 무의식적으로 그런 관계를 반복하게 된다. 마치 과거에 해결되지 않은 감정을 다시 재현하고, 이번에는 다른 결말을 만들어보려는 **‘심리적 반복 강박(repetition compulsion)’**처처럼 말이다.

이러한 반복은 상처를 다시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과거의 상처를 ‘이제는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실현하려는 시도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반복은 치유가 아니라, 더 깊은 혼란과 상처를 남긴다.

3. 신념과 자기개념이 선택을 제한한다
"나는 이런 대우를 받을 만한 사람이야."
"내가 좋아하는 건 이런 스타일의 사람이야."
"난 원래 이런 일을 잘 못 해."

우리가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신념과 자기개념(self-concept) 역시 선택에 영향을 준다. 특히 부정적인 자기개념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무의식적으로 설정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한다. 그래서 변화보다는 반복을 택하게 된다. 왜냐하면 ‘익숙한 실패’는 ‘불확실한 성공’보다 안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념은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작용한다. 연애뿐만 아니라, 직장, 인간관계, 라이프스타일, 심지어 자기 대화 방식에서도 반복되는 패턴을 만들어낸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 되어, 실제로 그런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4. 변화는 불안하다: 안정 vs 성장의 갈림길
모든 선택의 뒤에는 불안이 있다. 우리는 변화와 성장이라는 욕망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그로 인한 불확실성과 위험을 회피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안전한 반복'을 택한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인간이 자아실현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본능은 자주 불안을 유발하는 낯선 선택을 동반한다. 그래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 욕망을 억누르며, 과거의 패턴 안에서 머물게 된다.

한편, 반복적인 선택은 의미 있는 변화에 대한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익숙한 것을 버리는 것은 두렵고,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것은 불확실하다. 그래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스스로를 비난하고 고립시키며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힘들어한다.

5. 반복의 고리를 끊기 위한 첫걸음
그렇다면 우리는 이 반복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1) 의식화하기:
반복되고 있는 패턴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매번 어떤 사람에게 끌리는가? 어떤 상황에서 불편하거나 무력함을 느끼는가? 그런 상황이 과거의 어떤 기억과 연결되어 있는가?

2) 감정 살펴보기:
선택의 순간에 어떤 감정이 작동하고 있는지 알아차려야 한다. 두려움? 수치심? 버림받을까 봐 불안한 마음? 감정을 외면하지 말고, 그 안에 숨겨진 메시지를 들어보자.

3) 새로운 반응 시도하기:
익숙한 선택이 아닌, 조금 낯설지만 의식적으로 연습해 보자. 처음엔 어색하고 불안할 수 있지만, 이 과정을 통해 점점 무의식의 패턴을 재구성할 수 있다.

4) 심리적 지원 받기:
반복되는 패턴이 너무 고착되어 있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심리 상담은 내면의 무의식을 탐색하고, 새로운 선택지를 발견하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다.

마치며: 반복은 ‘문제’가 아니라 ‘신호’다
무의식적인 반복은 우리의 심리가 보내는 신호다. 아직 다치고 회복되지 않은 감정이 있다는 것, 아직 풀리지 않은 내면의 과제가 남아 있다는 것. 그래서 반복은 곧 치유의 기회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반복하는 나도 나다. 중요한 건 그 안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조금씩 다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려는 의지와 용기다.

반복의 미로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그 미로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 그 안에서 길을 잃는 대신, 나를 이해하는 나침반을 갖게 되길 바란다.